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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랑했고 뒤축이 닳아버린 구두 한 컬레 남겼다. 돈 한 푼, 물론, 시는커녕 편지 한 장 남기지 않았다. 섬 섬엔 거의 가본 적이 없다. 뱃멀미 때문이다. 강화도, 거제도처럼 육로로 연결된 섬을 제외하고는 비행기로 제주도에 두어 번 가본 것밖에 없다...

어느새 낡고 헐거워져 더 이상 상처를 만들 수 없는 헌 구두 그 뼈아픈 구두가 내 못생긴 발을 꼭 닮아 있음을 알게 되는 것이라 했다 한쪽으로만 무거운 가방을 메는 외골수로 뒤축이 삐뚜름하게 닳은 구두가 내 칼발을 제 안에 들이느라 나보다 더...

사진 〈Bing Image〉 슬픔의 뒤축 이 대 흠 슬픔은 구두 같습니다 어떤 슬픔은 뒤축이 떨어질 듯 오래되어서 달가닥거리는 소리...슬픔은 진즉 나를 버리려 했을 것이지만 나는 슬픔이 없는 게 두렵습니다 이미 있는 슬픔도 다하지 않았는데 새 슬픔을...

사이에 누군가 급하게 벗어두었나 가지런하지 않다, 곧 어디론가 떠날 의도가 있는 것 같다 말로는 할 수 없는 이야기들이 아직 남아 있다 가림으로써 드러내 보이려는 안간힘이다 굳이 말하지 않아도 땀과 고단함이 남긴 흔적 닳은 구두 뒤축에 묻어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