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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이 새까만 지우개 붙박이 된 생각들 잘라낸 채 한참을 들여다본다 저질러 놓고 나면 큰 뜻 세우고 흔적마저 뭉갠다 몽당연필과 흰 지우개로 세상을 그렸다 마른침 묻혀가며 눌러 쓴 낱말들 더하고 빼며 꼭 있을 정답을 찾아 얼마나 지우고 다시 썼던가...

수북히 쌓였고 거미줄이 주렁주렁 쳐져 퀴퀴한 냄새가 났다 머리를 숙여 기어가니 땅바닥에는 선배들이 흘린 수 많은 몽당연필과 지우개 삼각자 구슬등이 깊은 잠에서 깨어났다 모두가 보물처럼 기다리고 있었다 좀 창피해도 주섬주섬 호주머니에 쑤셔넣고...

쓰세요. 쓰다쓰다 틀리면 지우개로 깨끗이 지우면 되니까요.” 오늘따라 노안의 침침한 눈으로 쓰다쓰다 짧아진 몽당연필과 지우개가 흐르는 세월 속 나의 일상을 그려주는 둘도 없는 다정한 친구처럼 느껴진다. <윤영순 /美 메릴랜드 거주> 미주 한국일보...

아빠도 떠오르고 놀 때보다 그려지는 게 참 많다. <몽당연필> 키가 작아 볼품없다고 쓰레기통에 버려진 날 서러운 마음...귀에 꽂혀 긋는 줄이 똑 바르면 감탄사가 펑펑 잘못은 짝꿍 지우개가 얼른 지워주니 실수도 가려지고 작아도 작은 게 아니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