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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친 귀부의 몸통은 덩그러니 황토 자리를 깔고 앉았다. 제각각 흩어진 돌들이 사고무탁으로 노거수에게 제 몸을 맡기고 무연하다. 햇살은 담백하게 내려앉고 바람은 가식 없이 방랑한다. 계절이 비껴간 터는 옛날의 어스름을 닮아 홀로 담담하다. 젖은 숨...

소소리 바람에 나부끼는 저게 무엇인가 12 가뭇없다 전혀 안 보여 찾을 길이 없다 들판 저편으로 가뭇없이 사라져 간다 13 무연하다 아무 인연이 없다 저만치서 무연히 바라보곤 했다 14 별박이 공중에 높이 떠올라서 아주 작게 보이는 연 운이 좋으면...

맞이한 것은 발목을 덮는 낙엽과 푸른 이끼 낀 빗장 질린 山門이다. 아웅다웅 토닥대며 살아온 삶이 굳게 닫힌 山門 앞에서 무연하다. 朴齊家는 〈妙香山小記〉를 이렇게 맺는다. 무릇 유람이란 흥취를 위주로 하나니, 노님에 날을 헤이지 않고 아름다운...

주변의 고풍스러운 건축 장식들 푸짐한 까렐 다리와는 달리, 허허로운 강 위에 홀로 반공(半空)에 걸린 긴 다리이다. 그냥 무연하다. 아니 그것이 더 좋기도 하다. 강은 산 그림자로 고적하고 물 사이로 간간 모래 벌이 인공을 밀어내고 있다. 나는 유럽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