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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인 / 안희연 해설 그는 다섯 개의 칼을 가졌다 (신은 다섯 개의 창조 도구를 가졌다. 다섯 개는 많이 가졌다는 의미) (6일째 인간을 창조했으니 그 전의 5일간 충분한 실험을 그친 것이다. 그 5일의 완벽함으로 인간을 창조했다) ​ 나는 색이 곱고 결이...

꺾어 당신을 봅니다 두 문장은 같은 말 같지만 한 문장 속에선 속눈썹 하나 젖지 않고 한 문장 속에선 기 억까지 흠뻑 젖는다 키 작은 아이가 찬장 속 곶감 단지를 발견한다면 높이를 계산하기 전에 일단 손부터 뻗을 것이다 아이는 튀어오른다 곶감을...

놓친다 ​ 사과가 굴러간다 ​ 굴러간다 ​ ​ 그로부터 세번의 여름이 흘러갔다 ​ 나는 어떤 사과에 대한 기억을 가졌고 이따금씩 키가 자랐다 ― 시집 『너의 슬픔이 끼어들 때』(창비, 2015) * 안희연 : 1986년 경기 성남 출생. 서울여대 중문학과 졸업. 명지대...

레인/안희연- 기지개를 켜자 손끝에 있다, 비처럼 쏟아지는 네가 있다 위아래가 뒤바뀐 삶도 있다고 뻗치고 헝클어지는 게 일이라고 —멀리서 보면 폭포 같지요? 당신 안에도 나 있지요? 봉두난발 머리칼 속에 맹랑한 눈동자를 숨기고 빤히 본다 이것이...

의자의 구조에 대하여 의심을 품었다. 하루해가 저물 때까지 한 사람을 완성하는 일. 줄줄이 나무들이 쓰러집니다 / 안희연(安姬燕) 키 크는 일에 관해서라면 나도 조금 할 말이 있어요 허물어지는 계단을 달려와 단숨에 뛰어내리는 일 공중에 떠오를 때...

무게 / 안희연 더는 길어지지 않는 손가락을 가졌다 막다른 곳에서만 멀쩡한 우리들 봉투를 뒤집어쓰고 얼굴이라며 즐거워한다 나의 손은 칼이었을 때의 기억을 갖고 있다 나무나 돌을 쓰다듬으면 그 안에서 사람이 걸어 나왔다 날카로움과 부끄러움은...

내 키가 자란다. 내 생각이 자란다. 여름 /이시영 압구정동 한양아파트 앞길 아카시아꽃이 활짝 피어 노오란 꽃잎들을 와르르 포도 위에 쏟아놓는다 그 위를 아무것도 모르는 계집년 둘이 허연 다리를 허벅지까지 드러낸 채 검은 선글라스를 끼고 걸어간다...

편지 안희연 나는 핏기가 남아 있는 도마와 반대편이라는 말을 좋아해요 오늘은 발목이 부러진 새들을 주워 꽃다발을 만들었지요 벌겋고 물컹한 얼굴들 뻐끔거리는 이 어린 것들을 좀 보세요 은밀해지기란 얼마나 쉬운 일인지 나의 화분은 치사량의 그늘을...

작은 베르나르두 소아레스 씨 안희연 나는 큰 문을 가진 집에 살고 그는 작은 문을 가진 집에 삽니다 나의 이름은 페르난두...서른살 정도 되어 보이던 사내는 책 속에서 막 걸어나온 것 같은 모습을 하고 있었지요 마르고 큰 키에 새까맣게 그을린 얼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