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놓 은 설거지꺼리로 온 밤을 새워야 했다, 지겨워, 설거지 거세게 휘몰아치던 폭풍은 갔다, 한 평생 중심을 놓지 않으 려 안간힘을 써대던 내 어머니, 어느 날 미련없이 이 땅을 영 영 떠나가버렸다 해질 무렵 바람만 휑하니 부는 항구는, 지금 못내 적요하다

인생이 아름다워진다는 말 누가 믿으랴 젊은놈들은 모두 구정물처럼 혼탁해진 도시로 떠나 버리고 마을 전체가 절간처럼 적요하다 기울어지는 여름풍경 하루종일 허기진 그리움으로 매미들이 울고 있다 평상에 홀로 앉아 낮술을 마시는 노인 이따금 놀빛...

그 소설은 내가 숲으로 가는 열한번째 길 바깥에서이다 사람이 가장 나중에 사랑해야 할 것이 여자라고 씌어 있던 소설은 적요하다 길 위에서 돌을 사랑하고 돌을 흘러가는 강물의 흐름을 읽고 일곱번째 바람이 부는 저녁 그 돌의 가슴속으로 들어가 그 돌...

그 놀아남의 흔적을 들키지 않는다. 속불꽃은 바람과 뒤엉키는 그 놀아남의 흔적을 들키지 않는다. 속불꽃은 맹렬하고도 적요하다. 이 맑은 불은 장작에 뿌리박은 불길의 운명을 이미 떠난 것처럼 보인다. 이 불길은 흙을 흔들지 않고 고요히 흙 속으로...

영민하면 영민할수록 인생은 고달프기 마련이다 그러니 어리석음이 곧 편안함 일런지도 모른다 희로애락의 경계가 무너져서 세상이 뿌옇다 말도 멀어져 침묵한다 그렇게 적막하고 적요하다 종착역은 아득해서 다 그렇다 결국은 이승의 모든 것들은 가볍다

호넨인이다. 세심교 다리를 건너 울창한 동백 숲속 조촐한 사원인데 지붕에 푸른 이끼가 가득한 산문 너머 묘지의 풍경은 적요하다. 그곳에 늦가을 햇살이라도 잠시 머물다 가면 누구라도 철학자의 마음이 되어 서성이게 된다. 일본의 문호 다니자키...

-승가로/주석희- 영정사진을 안고 나오는 상주의 어깨는 묘지의 밤처럼 적요하다 비구니가 멈춰 선 저기서 공동묘지와 돼지도살장과 장례식장이 갈라진다 근조 버스 경적 소리에 유치원생들이 산국처럼 장례식장 담장 밑 으로 달라붙는다 자동차 사고로...

오동나무 상자 속에 고이 개어놓은 옷을 펼쳐놓고 혹시 변질되지 않았는지, 돋보기안경 너머로 찬찬히 살피시는 어머니 눈길은 적요하다. 포장만 남은 약 봉지를 새것으로 바꾸어 넣으며, 거풍을 위해 바람 좋은 볕자리를 찾는다. 어쩌면 올해가 마지막...

잃은 패배자들과 죄인들이 모여 살아가는 곳! 하기에 이곳에 활기가 없는 것은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흑풍사는 늘 쓸쓸하고 적요하다. 도처에 폐허의 잔해와 황량함만이 머물러 있다. 적지 않은 사람들이 이곳에서 살아가되, 그 누구도 이곳에 정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