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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무릇 / 조규하 먼발치 산사 아래 외발로 서서 피네 긴 목 빼고 기다리는 여름밤 달빛 그늘 바람결 스쳐만 가도 그대인가 돌아보네 억새 물결 / 조규하 나 언제 그 가슴에 저리 희게 빛날거나 사람은 간 만큼씩 다시 또 온다는데 아직도 그대 빈자리 달빛...

점자 편지 조규하 돌올한 점을 찾아 손가락이 지나간다 침묵을 때워주는 손끝이 입술이다 따습게 지나가는 혀 마음을 핥아준다 말을 잃은 당신이 점점이 찍어 쓰신, 시력을 잃은 내가 더듬어 읽노라면 한 번도 듣지 못했던 목소리가 들린다 스마트 신...

상냥한 이별 조규하 너를 멀리 두고 돌아서는 하늘을 봐 얼굴이, 뒷모습이, 발걸음이, 희미해져 잊어라 그런 말 따윈 우리 그냥 묻어두기 꿈길에 만나더라도 아는 척은 말기로 해 빨노파 색을 섞어 검정을 만들듯이 어둠이 깃든다 해도 이제는 놀라지마...

이별의 잔상들은 사라지는 법이 없다 달팽이관 한쪽 어디 도둑처럼 숨었다가 때아닌 어지럼증으로 온몸을 쏘다닌다 -《좋은시조》 2024. 봄호